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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시창작반 ▶2025 전라매일 신춘문예 시 당선◀ 배은율의 <흙의 상소문>

등록일 2025-01-09 작성자 학과 관리자 조회 117

 

경축 동국대학교 고양미래융합교육원 행복한 시창작 반

2025 전라매일 신춘문예 시 당선 ◀ ​

 

2025 전라매일 신춘문예 시 당선작

- 배은율의 <흙의 상소문>

흙의 상소문

배은율

 

말 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고 싶을 때 흙은 붓을 들어 상소문을 올린다

얼마 전 흙속에 이름 모를 시체가 암매장 당한 적이 있다

이럴 때 흙은 운다, 울음이 붓을 키운다

 

흙이 밀어올린 나무나 풀들은 보이는 붓이지만 아지랑이처럼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붓도 있다

그러나 보이는 붓보다 보이지 않는 붓의 힘이 더 세다

 

오래 전에 흙은 붓을 들어 낯빛이 다른 계절들이 서로의 낯빛을 훔쳐 달아난다고 쓴 적이 있다

이런 글은 기상이변이나 전쟁이 났을 때 쓰는 글이다 이럴 때 붓은 투박한 땅의 문체로 겁 없이 흙의 상소문을 쓴다

 

이따금 꽃가지들마다 이슬이 옮겨 앉는 일, 톡톡 터지는 이슬방울에 볼과 볼을 서로 맞대느라 바람이 물빛 아침을 잊곤 하던 일을 기억하기 위해 땅은 붓을 들기도 한다

이럴 때 붓은 새의 귀에도 들릴 듯 말 듯 바위 틈 살꽃들의 신음소리처럼 섬세하게 글을 쓴다

하루를 건너온 빛바랜 기억들이 제 생각의 부피를 키우는 동안, 땅은 붓을 들어 날마다 흙의 상소문을 올린다

 

흙이 상소문을 올리는 곳은 바람이 오가는 허공이다

허공에는 수많은 소문이 살고 있다

그래서 붓은 늘 분주하다

 

 

<시 부문 당선소감-배은율>

시를 쓰는 지인으로부터 걸려온 위로 전화를 받고 마음을 추스르다가 낯선 전화 한통을 받았다, 당선이란다. 연락이 더 늦었더라면 울렁증으로 목이 빠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무척 기뻤다.

 

내 삶의 모든 것인 내 시의 현주소, 그 언저리에는 늘 의문부호가 따라다녔다. 수많은 물음표들이 나를 이곳에 데려다 놓았다. 이제 시작이다. 그럼에도 나를 증명해 보일 시들은 아직 발아하기 직전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시를 쓰면서 나 자신을 사랑하는 새로운 길을 알게 되었고, 사물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었다.

 

힘겨운 내 삶이 안착하는 곳마다, 잃어버려야 하는 것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면서 마음 한구석에 커다란 구멍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제는 그곳에 기거하던 검은 파도를 말끔히 걷어내고 저 멀리 수평선을 불러들여도 될 것 같다. 만약 잃어버린 그것들이 천개의 말이 되어 내게 안긴다면? 이니 그것들이 아름다운 시가 된다면 그곳엔 사계절도 없을 것이다.

 

시린 발을 갖고 있던 제 시를 따뜻하게 보듬어주신 김동수 선생님과 전라매일 신문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래도록 애정으로 지도해주신 박남희 교수님 고맙습니다. 끝으로 입버릇처럼 힘들다 말했을 때 말없이 따뜻한 미소로 다가와 톡탁여주었던 나의 문우들, 동국대 시창작반 문우들(성은.은미.정희.현정.남희,주안)과 3년 동안 함께 해온 시전문지 <아토포스> 가족들과 함께 오늘의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동안 외로웠을 나의 흙과 허공에게, 그리고 제시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무한한 사랑을 보냅니다.

 

배은율: 부산 영도 출생. 동국대 행복한 시창작과정 재학. 시전문지 <아토포스> 편집 동인.

<시 심사평-김동수>

신춘문예 시는 세상을 새롭게 보는 안목의 깊이와 독창적인 문체 그리고 역경 속에서도 그것을 창조적 사유의 세계로 견인해 가려는 치열성이 아름답게엮어져 있어야 된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네 분의 시를 최종심에 올렸다.

 

문현순의 「이생규장전」은 죽음을 초월한 남녀 간의 애절한 사랑을 다룬 김시습의 한문소설을 소재로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모래알처럼 빠져 나가는’ 환상의 경계에서 ‘너를 기다리는’는 화자의 절절한 심정에 공감된 바 있으나 전반적으로 평이한 점이 아쉬웠다.

 

우병기는 「조약돌3」에서 ‘너를 ~ 이렇게 가꾸어 준 것은/ 햇빛과 달빛, 비바람과 물결’이라며 존재의 본질을 향한 인식의 깊이가 남달랐으나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의식이 좀더 요구되었다.

 

끝까지 조온현과 배은율의 시를 놓고 고민하였다. 조온현의 「신계(神界)로 가는 길」은 죽음에 대한 새로운 사유, 곧 ‘신계로 가는 길은 걸어 갈 수 없어 육신을 태워 하늘로 보낸다’는 아포리즘과 화장(火葬)을 또 다른 윤회의 성소로 표현한 대목이 인상적이었으나 몇 군데 산문적 서술이 끝내 마음에 걸렸다.

이에 비해 배은율의 「흙의 상소문」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미시의 세계, 이는 불교의 공즉색의 세계와 양자역학의 입자와 파동 그리고 질량·에네지 등가법칙과도 동맥을 이루면서 우주적 비의를 새롭게 읽어내고 있었다. ‘흙이 상소문을 올리는 ~허공에는 수많은 소문이 살고 있다’는 경이로운 표현이 그것으로 우리들의 정신세계를 한층 드높여 주고 있어 당선작으로 뽑았다. (이언 김동수)

 

 

출처: 행복한 시창작 박남희 교수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emis77/223712356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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